지난 몇 주 동안 증권시장 코스피지수는 심리적 방어선인 1980 부근에서 지루한 공방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11월11일 코스피지수는 2000 밑으로 내려왔고, 그 후로는 아직 2000 위로 못 올라갔다. 코스피 1900 언저리의 숫자는 증시에서는 아주 상징적인 수치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376.3에서 증시를 넘겨받았고, 2배 약간 안되는 수준인 627.5로 마감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걸 세 배 가까이 불려서 1897로 이명박 정부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보수정권 9년, 1970과 1980 사이에서 지루한 공방이 이어지는 중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민주정권에서 주가지수가 6배로 늘어났고, 그 후로는 9년째 제자리이다. 주가만 보면 보수정부는 도대체 뭘 한 건지 전혀 나타나지가 않는다. 4대강 추진하고, 창조경제 한 결과를 증시는 이렇게 보고 있다. 시장은 그들에게 아주 냉정했다.

 

비슷한 기간 미국 주가지수는 더 높아졌고, 독일은 아주 많이 높아졌다. 영국은 적당히 올랐다. 우리나라랑 비슷하게 제자리걸음을 한 나라도 있다. 일본이 그렇다. 프랑스는 훨씬 내려갔다. 유럽연합(EU)은 지표 자체가 많이 내려갔다. 일간, 주간 단위의 주식시장은 워낙 변동성이 크고 개입하는 요소도 많아서 종합적으로 뭔가를 읽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월간, 연간 지표로 보고, 장기가 되면 그 나라의 경제를 평가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 중의 하나가 된다. 주가지수, 환율지표, 이 두 가지가 대표적으로 한 나라의 체질을 보여주는 장기 지표이다. 그리고 이렇게 장기 지표를 보면, 그 나라의 정치와 사회적 상황 자체가 어느 정도는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성과가 정치적 성과가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성과가 경제적 성과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 트럼프 이후의 미국 경제는? 새로운 질문이다.

 

증시만 놓고 해석하면, 한국 경제에는 보수의 경제 리스크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다. 보수가 집권해서 경제가 ‘훨훨’ 살아난 적이 최근에는 없고, 주가도 이걸 어느 정도는 반영한다. 주가만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선진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 한 가지가 있다. 오전장에서 외국인들이 팔고 나가면 오후장에 갑자기 기관이 대량 매수를 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날이 있다. 이걸 ‘도시락 폭탄’이라고 부른다. 오전 중에 청와대 같은 데서 급하게 연락이 오면, 국민연금이나 우정사업본부 같은 공적 연기금이 떨어진 종목들을 사들인다. 누가 연락을 한 건지, 어떻게 개입을 한 건지, 밀실에서 벌어지는 자세한 사항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점심 먹고 오면 터진다고 해서 흔히 도시락 폭탄이라고들 부른다. 이런 건 외국에 없다. 10년 가까이 도시락 폭탄을 운용했지만 증시는 제자리이다. 연기금 돈만 까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주가가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하야든 탄핵이든, 박근혜 리스크가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총리는 경제를 전혀 모르고, 경제를 아는 사람들은 권한이 없는 ‘경제 거버넌스’ 공백기가 한동안 있을 것이다. 이때 섣불리 주식시장 부양한다고 연기금을 활용하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국인들이 파는데 기관들만 사는 것, 이런 부자연스러운 일이 정치적 의도로 벌어지면 안된다. 연기금은 장기 기금이고, 장기적 요소는 장기적 흐름대로 움직여야 한다. 삼성 합병 도와주고, 도시락 폭탄 던지고, 그런 걸 하라고 국민들이 연기금 모아준 것은 아니다.

 

정권의 도시락 폭탄, 이런 것만 없어도 박근혜 리스크의 1차 방어조건은 형성된다. 연기금은 수익률을 높이고 공익성을 확보하는 게 존재 이유이다. 주가지수 방어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연기금의 안정적 운용, 이게 국민경제 운용의 1차 조건이다. 보수정권 9년, 이 간단한 기본을 너무 무시했다.

 

우석훈 | 타이거 픽쳐스 자문·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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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